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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소설

by K민석 2016. 3.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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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속의 문장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 겨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 상관 없었다.

-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2/ 한 장의 글

-

벌써 세 시간도 전의 일로, 사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 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여자 한쪽 눈이 또렷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 속 깊숙이 울릴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

아아 은하수, 하고 시마무라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순간, 은하수 속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은하수의 환한 빛이 시마무라를 끌어올릴듯 가까웠다. 방랑중이던 바쇼가 거친 바다 위에서 본 것도 이처럼 선명하고 거대한 은하수였을까.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와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

하늘을 가득 채워 가로지르는 빛의 층이 이렇게 어두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믿기지 않았다. 희미한 달밤보다 엷은 별빛인데도 그 어떤 보름달이 뜬 하늘보다 은하수는 환했고, 지상에 아무런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흐릿한 빛 속에 고마코의 얼굴이 낡은 가면처럼 떠올라, 여자 내음을 풍기는 것이 신기했다.




3/ 책의 느낌

동양적 미의 극치라고 불리며 가오바타 야스나리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만든 작품, 설국
이 책을 읽어보면 왜 이 글이 그렇게 불리는지 언듯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극적인 내용은 없고, 소설적인 요소도 크지 않다. 다만 아주 섬세한 칼로 조각한 듯한 설원의 풍경과 겨울 밤하늘이 있을 뿐이다. 은하수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며 눈 얼어붙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같다. 당장이라도 추위에 입김이 후 하고 나올 것만 같은 소설. 

나는 항상 설원을 동경해왔다. 드넓은 대지에 순백의 색채가 내려앉아있는 그 모습을 보면 내 모든 더러움과 죄가 씻겨져나갈 것만 같은 구원을 받을 것같았다. 그렇기에 북해도의 겨울, 시베리아의 추위가 나는 부러웠다.
책에서나마 조금, 그 느낌을 느껴간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 유숙자 옮김, 2014
읽은기간 :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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