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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by K민석 2016. 1.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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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있다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았다는 것이 고맙고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지난 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그걸들을 지키기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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